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잊을 만큼 어떤 일에 깊이 빠져드는 순간이 있다. 책상 위의 만년필로 노트에 뭔가를 끄적이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창밖이 어두워져 있다.

이런 몰입의 순간은 대부분 예고 없이 찾아온다. 억지로 만들려고 해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마치 잘 만들어진 여행 가이드북을 따라 낯선 도시를 탐험하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골목길 같은 것이다.

흐름의 상태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말한 ‘플로우’ 상태. 의식이 완전히 하나의 대상에 집중되어 자아와 활동이 하나가 되는 경험. 그 순간 우리는 시계를 보지 않고, 배고픔을 느끼지 않으며, 주변의 소음에도 신경 쓰지 않는다.

요즘은 이런 몰입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스마트폰의 알림, 끊임없는 정보의 홍수, 멀티태스킹을 요구하는 현실. 우리의 주의력은 여러 조각으로 분산되고, 깊이 파고들 시간은 줄어든다.

작은 저항들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하루 중 한 시간이라도 알림을 끄고, 책상을 정리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무언가에 깊이 빠져드는 시간. 그런 시간이 쌓여서 우리는 스스로를 더 잘 알게 되고,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구분할 수 있게 된다.

디지털 시대의 소비와 달리, 몰입은 우리 내면에서 무언가를 생산해낸다. 새로운 아이디어, 깊어진 이해, 또는 단순히 충만한 만족감. 이런 것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진짜 부다.

오늘도 그런 순간을 기다리며, 조용한 공간을 만들어본다. 몰입은 선물과 같아서, 준비된 사람에게만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