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책을 읽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오면 하루 만에 다 읽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책 한 권을 끝까지 읽는 것이 어려워졌다. 처음엔 시간이 없어서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집중력의 변화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익숙해지면서, 우리의 뇌는 짧고 자극적인 정보에 중독되었다. 긴 호흡의 글을 읽는 것이 힘들어졌다. 몇 페이지 읽다가 다른 생각이 들어서 휴대폰을 확인하고, 그러다 보면 책을 덮게 된다.
하지만 책 읽기를 다시 습관으로 만들고 나서 느낀 것은, 이것이야말로 진짜 ‘느린 미디어’의 힘이라는 것이다. 저자와 나만의 조용한 대화. 내 속도로 생각하고, 되짚어보고, 질문할 수 있는 시간.
읽기의 의식
요즘은 읽기를 하나의 의식처럼 대한다. 특별한 공간, 특별한 시간을 정해두고 책을 펼친다. 커피 한 잔, 조용한 음악, 그리고 휴대폰은 다른 방에 두고.
좋은 문장을 만나면 손으로 밑줄을 긋는다. 디지털 하이라이트와는 다른 느낌이다. 손끝에 전해지는 종이의 질감, 펜이 움직이는 소리. 이런 물리적 경험이 기억을 더 깊게 만든다.
책장의 풍경
집 안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책장이다. 읽은 책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각각의 책은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하고 있다. 어떤 마음으로 그 책을 집어들었는지,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책장은 나의 지적 여정을 보여주는 지도 같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연결하는 다리이기도 하다. 언젠가 다시 읽고 싶은 책들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다.
책 읽기는 결국 자신과의 대화다.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다가 문득 내 이야기를 발견하는 순간들. 그런 순간들이 모여서 우리는 조금씩 성장한다.